본문 바로가기
논평

공영방송 사장 임기제, 지켜야 한다

by PCMR 2023. 9. 7.

[논평]

공영방송 사장 임기제, 지켜야 한다

 

최근 8명의 KBS 사장 가운데 3명이 해임됐다. 그리고 다시 4번째 해임이 임박했다. 3년의 임기를 채운 건 2명에 불과하다. 결정적인 요인은 정치적 변화, 즉 정권교체였다. 세월호 보도 참사로 인해 해임된 길환영 전 사장을 제외하고 3명의 사장이 정권교체에 따라 해임되거나 해임이 추진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정권이 바뀌면 공영방송 사장도 바뀌어야 한다는 정치적 해임은 사법부에 의해 모두 취소됐다. 정치 권력마다 강제 해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사유를 들었지만 법원은 해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그 이유는 해임의 사유보다 임기제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임기제는 왜 중요한가. “KBS 사장의 임기 제도는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정성,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해임사유에 따른 해임처분의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 등과 비교하여 볼 때 더 높게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고대영 해임처분 취소 판결문, 서울고등법원 201873364)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적인 제도인 임기제가 지금처럼 유명무실화된 건 대통령의 해임권을 인정하면서도 사장 해임에 관한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은 법 제도적 공백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세 차례 판례를 통해 법원은 해임의 절차와 요건에 관한 나름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따라서 법원 판례가 제시하는 기준에 입각해 해임 여부를 엄격히 판단해야 할 책무가 KBS 이사회에게 부여된다.

 

김의철 사장의 해임안은 과연 그렇게 추진되고 있는가. 지난달 30KBS 이사 5(권순범·김종민·이석래·이은수·황근)은 김의철 사장 해임안을 상정했다. 이들이 제시한 주요 해임 사유는 무능 방만 경영으로 인한 대규모 적자(지난해 118억 원, 올 상반기 461억 원), 불공정 편파방송으로 수신료 분리징수 초래 KBS 내 사장 퇴진 여론으로 리더십 상실 고용안정위원회 설치 노사 합의 강행 등이다.

 

먼저 방만 경영’, ‘대규모 적자의 경우 재판부는 경영성과가 해임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지만 최종적인 해임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영악화의 구조적인 요인, 자구노력, 경영판단 오류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정연주 전 사장 판결에서 누적 사업손실액 800억여 원 등의 KBS 적자구조 만성화에 대한 경영상의 책임을 인정하였지만 수신료 수입의 정체와 지상파방송의 광고수입 감소 및 공적책무 수행으로 인한 지출비용 증가 등 역시 재정 상태 악화에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는 점에 비추어 해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2008구합32317 판결)

 

또한 길환영 전 사장 판결에서도 법원은 2013274, 20141분기 168억 원의 수입적자와 345억 원의 사업손실이 발생한 사실을 적시하면서도, 사실만으로는 재임기간 중 경영판단에 실패하여 재원 위기가 가속화되었다거나, 경영상 잘못이 해임처분에 이를 정도의 것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적법한 해임의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2014구합14723 판결)

 

불공정 편파방송, KBS 내 사장 퇴진 여론 등의 해임 사유는 고대영 전 사장 판례에서 법원의 판단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 재판부는 KBS 신뢰도를 조사하는 기관, 목적, 방법 등에 따라 조사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방송사에 상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KBS의 신뢰도 및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이상 하락을 하여야 그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만한 보편적인 기준이 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설문조사 등을 통해 KBS의 신뢰도 및 영향력이 다소 하락하였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사장이 임기만료 전에 해임될 정도로 사장의 적격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201873364) 이와 관련 KBS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조사에서 KBS4년 연속 압도적인 신뢰도 1위를 기록했고, 그 외 공신력 있는 대부분의 매체 조사에서 KBS는 영향력과 신뢰도 1, 2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고 반론한다.

 

KBS 일부 이사들은 대다수 직원들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어 리더십을 완전 상실해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직무수행능력 상실에 대한 판단 역시 고대영 판결문에 담겨 있다. 고 전 사장 재임 당시 KBS기자협회와 PD협회 등이 방송제작거부를 선언했고, 본부노조는 총파업을 돌입했으며, KBS노동조합은 이사회에 해임촉구 청원서를 제출했다. 파업 참여 인원은 1,600여명에 달하고, 1,100여명의 기자, PD가 제작을 거부했다. “본부노조 등이 약 4개월 동안 파업을 하여 방송이 파행적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법원은 방송 파행에 대하여 사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나 사장직에서 해임되어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201873364) 김의철 사장에 대한 KBS내부의 퇴진 요구는 이에 비추어 적법한 해임 사유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은 판례를 통해 살필 때 김의철 사장 해임 제청안은 KBS 사장 해임처분의 기준은 다른 공공기관 등과 비교하여 볼 때 더 높게 해석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법적 기준, 나아가 공영방송 사장 임기제의 법률적 목적에 어긋난다고 본다. 과거 법원은 KBS 사장의 해임 절차에 관하여 방송법이나 관련 법령에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은 사정 등을 들어 해임처분의 형식적 하자가 명백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러 판례를 통해 확립된 판단 기준을 무시하고, 위법성을 알면서도 해임을 강행하는 것은 해임의 위법성이 훨씬 중대하다고 할 것이다.

 

2008년 이후 15년간 KBS 사장은 총 7차례나 교체됐고, 3명이 해임, 그 가운데 2명이 해임 취소 판결을 받았으며, 평균 재임 기간은 약 25개월에 불과하다. 이처럼 사장의 임기가 2년 남짓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공공미디어의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KBS 이사회와 구성원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사장교체가 임기보장보다 중요한가. 사장을 해임하면 위기가 해소되()는가. 위법해임으로 ‘KBS() 정상화한다는 생각이 정상인가. KBS에 진정으로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KBS의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결정지을 선택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202397

언론개혁시민연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