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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논평]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by PCMR 2013. 9. 11.

 

20130515[논평]CBS판결.hwp

 

[논평]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 언론의 역할 재확인한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

언론의 자유와 행정심의에 관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어제(14일) 서울행정법원은 CBS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법정 제재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처분취소 소송에서 CBS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에서는 시청자의 알권리가 더욱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언론 본연의 역할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지난해 3월 방심위는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의 대상이 된 방송에는 우석훈 교수와 선대인 소장이 출연해 소값 폭락 사태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방심위는 해당 출연자들이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단정적반복적으로 정부 정책 전반을 비판했다”며 CBS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반했다고 제재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방심위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 해당 심의는 부적절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최악의 심의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에 대한 감시는 언론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가장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나 방심위는 정부비판에 대한 심의를 최대한 삼가야 한다. 방심위가 비록 독립성을 표방하고 있다고 하나 그 성격상 행정기구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행정기구가 징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때문에 언론단체들은 정부정책 비판을 행정심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방심위는 이를 묵살했다.

해당 심의에서 방심위는 제재권한 뿐 아니라 심의 개시 권한까지 행사했다. 통상 방송심의는 시청자의 민원제기로 시작한다. 공정성 심의에서는 이해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미화의 여러분>은 민원이나 불만접수 없이 방심위가 직접 문제를 삼았다. 재판에 비유하면 기소권, 수사권, 판결권을 모두 독점한 셈이다. ‘표적심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 당시 정부여당 측 심의위원들은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공정성과 객관성과 관련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정 시기, 그것도 정치일정을 고려해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무런 법적근거도 없고, 방심위 권한 밖의 일이다. 권한남용이자 명백한 과잉심의다.

무엇보다 문제는 해당 심의가 시사 프로그램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는 점이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인터뷰는 객관적인 보도와 달리 출연자의 ‘견해’를 듣기 위해 이뤄진다. 특정 출연자의 ‘견해’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라디오 인터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시 <김미화의 여러분>은 농림수산부 장관을 출연시켜 반대되는 견해도 충분하게 전달했다. 그런데도 방심위는 막무가내였다. 방송 출연자에게 엄격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것은 위축효과를 야기한다. 특히, 정보접근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 계층은 더욱 그렇다. 사회적 약자의 언론 참여를 가로막는 것은 방심위의 존재목적에 반하는 것이다.

결국 엉터리 심의는 법원에 의해 바로잡혔다. 법원은 언론의 정부 비판과 행정심의와 관련해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먼저, 법원은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방송이 정부를 비판할 때 공정성이라 함은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면 충분”한 것이지 “같은 프로그램에서 같은 방송시간에 동등한 정도의 기회를 제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방송에 대응하여 정부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성 규정이 그간 방심위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기계적 균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매우 정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행정심의의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 제21조 제1항이 보장하고 있는 방송의 자유는 주관적 공권으로 자유권의 하나이므로 최소 침해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방심위가 정부 정책에 대한 논평 프로그램에 대해 재제조치를 취함에 있어 국민의 알권리 보장, 민주주의의 유지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간 언론시민단체들이 주장해왔던 ‘최소심의의 원칙’을 법원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방심위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최근 들어 방심위의 엉터리 심의가 법원에서 연달아 뒤집히고 있다. 최근 법원은 권재홍 앵커의 부상소식을 전한 MBC<뉴스데스크> 보도가 “사실과 다르고 MBC노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정보도와 함께 손해배상 2000만원을 선고했다. 해당 보도에 허위가 없다며 ‘문제없음’을 의결한 방심위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번 CBS 판결에서도 법원은 방심위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취소’할 것을 명령했다. 이쯤 되면 망신살이 제대로 뻗친 것이다. 검사 출신 위원장을 두고도 이런 꼴이다.

잇따른 법의 심판은 현행 방심위에 대한 사망선고와 같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방심위에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방심위의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정치권에 종속된 6:3 구조로는 방심위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다. 방송심의제도가 언론의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방심위의 구성과 운영에서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청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민간자율심의를 확대해야 한다. 최소심의원칙을 구현해야 한다. 권위주의적 심의모델을 청산하고 소통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심의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방심위 개혁을 위한 법제도 개선 과제다.

그러나 인적청산이 없으면 법과 제도를 개선해도 별 무소용이다. 정부비판을 처벌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공안검사 심의위원,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을 펼치다 유죄선고를 받고도 자리유지에 여념이 없는 심의위원, 공영방송 사장을 불법으로 내쫓고도 일언반구 반성이 없는 심의위원, 저널리즘에 대한 소신과 철학도 없이 거수기 노릇하는 영혼 없는 심의위원. 이렇게 양심불량에 위법을 일삼는 자들이 방심위에 존재하는 한 엉터리 심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볼 때 정부가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고, 정부가 국민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바로 여기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국민 세금만 낭비하는 ‘혈세 먹는 하마’가 있다.

2013년 5월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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