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가 야구중계 실수 정도밖에 안 되나
- 사안의 경중도 분별하지 못하는 한심한 방심위 -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한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시작부터 상식 밖의 심의결과를 내놓고 있다.
방송소위는 지난 7월 2일과 7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심의 안건들을 처리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안건은 세월호 사고 당일 발생한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였다. 이 오보로 사건 초기 생존자 구조작업에 커다란 혼선이 초래됐다. 역대 최악의 보도참사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KBS와 MBC가 세월호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도 그 피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국정조사 결과 방송사들의 무리한 속보경쟁에서 비롯된 오보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방심위는 “전원구조” 오보에 대해 행정제재에 불과한 ‘권고’ 결정을 내리는 데 그쳤다.
“전원구조” 오보에 대한 ‘권고’ 결정이 왜 솜방망이 징계인지는 다른 안건의 처리결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7일 방심위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 M.net <음담패설>, KBS N Sports 프로야구 중계에 대해 “전원구조” 오보와 같은 ‘권고’ 제재를 내렸다.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기 방심위 ‘권고’ 결정 내용>
방송사 |
방송내용 |
심의결과 |
KBS, SBS, MBC TV조선, 채널A, YTN 뉴스Y, MBN 세월호 뉴스특보 |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 |
권고 |
MBC <우결> |
꽃대 위에 달리는 파인애플을 나무에서 열린다고 잘못된 사실을 자막으로 내보냄 |
권고 |
M.net <음담패설> |
진행자가 2008년 가요대전 당시 걸그룹 소녀시대가 임진각에서 공연을 했다고 말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름 |
권고 |
KBS N 스포츠 <2014 야구중계> |
해설위원이 목동구장에서 홈런이 두 배 이상 나온다고 말하였으나 기록 확인 결과 목동구장의 경기당 홈런 개수가 타 구장의 2배를 넘지 않음 |
권고 |
MBC <우결>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파인애플은 뿌리가 땅에 박혀 있어. 그래서 무처럼 땅에서 파인애플을 뽑는 거야”라고 얘기하자 이를 바로잡는 취지로 “파인애플은 나무에서 자란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러나 파일애플은 나무가 아니라 “줄기처럼 보이는 꽃대 위에 달리는 열매”로 밝혀졌다. 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제작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에 대해 방심위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방송했다며 권고를 결정했다. 일부 위원들은 이 사안이 “시험에 날 수도 있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M.net <음담패설>은 MC 김구라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해당 방송에서 김구라 씨가 ‘2년 연속 가요대전 MC를 봤다’며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걸그룹 소녀시대가 “임진각에서 공연했다”고 말한 부분이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방심위는 “당시 소녀시대는 스튜디오에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우결>과 마찬가지 이유로 ‘권고’ 조치를 내렸다.
<KBS N Sports>는 야구 해설위원의 실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캐스터가 ‘목동구장은 홈런공장이다. 홈런이 많이 나온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하 위원이 ‘두 배 이상 나온다’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방심위가 KBO(한국야구위원회)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목동구장의 경기당 홈런 개수가 타 구장의 두 배를 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하 위원이 목동구장의 경기 당 홈런 수와 총 홈런 수 기록을 혼동하여 나온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만 방심위는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역시 ‘권고’ 조치를 내렸다.
방심위는 심의 과정에서 전례와 형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방심위가 내놓은 결과는 한 마디로 상식 이하이다. ‘파인애플이 꽃대에 열리는지, 나무에 열리는지’ 여부가 ‘단원고 학생들의 생사’ 여부만큼 중요한 일인가? “목동 구장에서 홈런이 두 배 이상 나온다”는 해설자의 실수가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와 똑같은 크기의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연예오락프로그램 진행자의 말실수가 세월호 재난보도의 실패와 같은 수준에서 논의할 대상인가?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똑같은 징계조치를 내렸다. 방심위원들이 생각하기에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나 해당 방송의 실수나 심의규정 위반 정도는 비슷하다는 뜻이다. 이런 심의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3기 방심위가 출범할 때 언론시민사회는 편향심의를 크게 우려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사안의 경중을 분별하는 기본적인 판단능력이 있는지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4년 7월 8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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