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언론은 대통령의 잘못을 가려주는 존재가 아니다
: 윤석열 대통령 욕설·비속어 논란…정치무능을 언론 탓으로 가리려 하나
또 MBC탓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욕설·비속어 논란을 ‘언론 탓’하며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타깃은 다시 MBC가 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인식은 언론과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1일, 3대 감염병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 참석 후 이동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XX들”, “X팔리다”라는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욕설과 비속어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미 의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언론은 물론 해외 주요 매체를 통해서도 관련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했던 대통령실은 15시간 만에야 입장을 내놨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다시 한 번 들어봐달라”며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XX들’ 역시 미 의회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회를 지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별도의 사과는 없었다.
온 국민을 ‘청력테스트’의 장으로 내몬 대통령실의 해명에 국민은 분노했다. 그러나 점입가경이라 했던가.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이XX들”이라는 욕설마저 없었다는 주장까지 하고 나왔다. 이 사건은 현재 정부여당이 설정한 ‘바이든 VS 날리면’이라는 프레임에 빠지고 말았다.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 훼손”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더욱 참담한 건,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부여당의 인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언론 보도’와 관련한 진상 규명을 시사했다. 본인의 언행으로 논란이 벌어졌는데도, 최소한의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그 지침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날 “MBC의 행태는 도저히 두고 보기 어렵다”면서 ‘사실왜곡’으로 몰아붙였다. 국민의힘은 MBC보도에 대해 형사고발을 비롯한 손해배상청구, 언론중재 등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MBC 항의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그에 앞서 서울시의회 이종배 시의원은 MBC 박성제 사장을 비롯한 편집자 및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언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 여당이 사건 초반부터 드러낸 ‘국익을 위해 이런 보도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언론의 역할은 모든 형태의 권력을 감시해 시민과 공익을 위해 보도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잘못을 눈감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에도 타깃은 MBC인가…언론과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
이번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이 뱉은 욕설·비속어에 대해 사과하며 일단락됐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며 사태가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정 정치세력과의 내통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언론탄압의 태세로 빠져들고 있다.
타깃은 이번에도 MBC다. MBC가 ‘바이든’이라고 표기하면서 타 언론사들이 이를 받아 그대로 썼고 그렇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각은 언론인과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다. MBC가 ‘바이든’이라고 쓰면 모든 언론이 그대로 따라 쓸 거란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SNS를 비롯한 커뮤니티를 통해 ‘MR제거’ 등 다양한 형태로 퍼진 상태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특정 방송사의 보도가 전체 여론을 장악한다고 볼 수 없다. 설사 대통령실의 주장처럼 ‘날리면’이 맞다고 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공식 행사장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사실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정치가 없는 게 문제
정부여당의 엉터리 대응을 보며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무능’을 ‘비속어 논란’으로 덮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난마저 나온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은 취소됐고,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회동이 ‘간담’으로 기록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는 48초 스탠딩 환담으로 끝나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에서 첫 공식 연설을 가졌지만 외신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이 같은 ‘외교참사’가 ‘비속어’ 논란으로 오히려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현실은 암담하다. 국민들은 연일 치솟는 물가로 인해 시름하고 있다. 오늘도 환율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민생을 살펴야할 정치권은 연일 ‘비속어’를 둘러싼 공방으로 바쁘다. 정부여당의 머릿속은 온통 ‘언론대응’ 뿐이다. 외교무능을 언론 탓으로 가리려 하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정치가 있어야할 곳에 정치가 없다. 언제까지 이런 꼴을 지켜봐야한단 말인가.
9월 27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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