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반민주적인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 개정 시도에 반대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우려대로 일을 저질렀다. 6월 16일 TV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 안을 입법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이 조치 ‘권고’한지 겨우 열흘이 지나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일이다. 방통위 전체 회의 개정안 상정, 안건 접수 후 불과 이틀 만의 조치다. 명백한 졸속처리다.
전기요금 고지서에 합산 청구 되어 오던 TV 수신료를 시행령을 바꿔 분리 징수 가능토록 하는 게 꼼수 처리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시행령 43조 2항 “지정받은 자(한국전력)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 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고 한 조항을 “한국방송공사가 지정하는 자가 자신의 고유업무 관련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수신료를 고지‧징수할 수 없도록” 한다고 바뀌어 놓았다.
KBS는 물론이고 EBS 등 공영방송 근간을 뒤흔드는 가히 급변의 계획이다. 일개 시행령의 몇 자 문구 변경으로 어마어마한 변화를 초래할 내용이다. 그 전개 양상은 분명하지만 파장의 규모는 어느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공영방송사 전체가 치명적 위협에 놓이게 된다. 전례 없는 경영 압박과 제작 자율성 위기, 독립성 침해가 불가피해진다. 징수 방식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공영방송시스템 전반의 위기가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밀어붙이기 속도전이 가히 숨 막힐 지경이다. 통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10일로 확 줄어든 입법예고 기간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법제처와 입을 맞춘 방통위는 “신속한 국민의 권리보호”를 이유로 든다.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때어내 징수하는 게 이렇듯 신속 처리할 ‘국민의 권리 보호’라면, 도대체 시행령으로 좌지우지하지 못할 ‘국민 권리 보호’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정상의 민주 정치를 압살하는 속도의 폭력이 무섭다.
열흘 동안 개인이나 단체, 기관이 의견을 내놓으라고 하는 말에서 우리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대통령실이 사실상 공영 방송 길들이기 차원에서 결정 하달한 조치다. 법제처 등 정부부처가 적극 혹은 소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는 사안이다. ‘여론’은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한 ‘국민의견 수렴’과 ‘공개토론’으로 이미 수렴되지 않았는가? 보수 수구 매체들의 노골적이고 집중적인 여론전으로 사실상 마감된 게 아닌가? 그런데 무슨 거짓된 청취인가?
반대 의견을 철저히 무시, 배제하면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비정상적 구조가 열흘 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그러고 나면 여야 2대 1 구도인 비정상적인 방통위가 뚝딱 의결할 게 분명하지 않는가? 이후 국무회의 등의 유사한 거수 절차를 거치고 시행령은 대통령 재가 후 다음 달 중에도 공포될 수 있다. 지난해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위한 대통령령 개정 후 1년 만에 우리는 그와 흡사한 속도전을 목격하고 있다.
수신료 분리 징수와 이를 통한 공영방송 통제가 그처럼 중대한 정권의 통치 대상이라는 의미인가? 그렇게 공영방송 KBS를 길들이는 게 경찰을 장악하는 것만큼이나 윤석열 정권에 다급하다는 것인가? 말 그대로의 조직적 플레이다. 독립적 합의기구여야 할 방통위가 정권의 감독에 따라 질주에 나선 모습이다. 확정되면, 한전도 따라서 움직일 것이다. 계약 변경 요청을 하고 나설 게 뻔하다. 그렇게 될 때 당장 빚어질 아수라장, 혼란상.
대체 이 논란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결코 현 정권에서 끝나지 않을 공영방송을 그 체제 유지의 책무를 위임받은 방통위가 위협하고 나선 모순을 방통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정권이 바뀌면 또 코드에 따라 시행령 문구를 바꾸고 뒤집고 하면 될 일인가? 내년에 있을 총선 결과를 지켜보면 되는가? 그런 정치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언론연대는 일방 통행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방통위의 정당성 위기를 다시 집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연대는 KBS는 물론이고 MBC, EBS를 포함한 공영방송 전반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우리는 공영방송의 저널리즘 기능, 문화적 수행 능력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우리는 변화하는 정치 상황 속 정파적인 논리에 따라 현 체제를 지지하거나 보호하려는 그런 운동적 작풍을 멀리한지 오래다. 우리에게 공영방송 체제는 오직 민주 정치적 장치, 미디어 공공성 영역으로서만 지켜낼 의의를 갖는다.
그런 관점에서 언론연대는 미디어 공공성 체계 전체의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는 수신료 문제에도 오랫동안 중요한 관심 사안으로서 접근하고 고민해 왔다.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문제는 정권이나 정치권, 방송사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시민 대중들의 사안이며, 이들과 함께 하는 시민사회, 바로 언론연대의 사안인 까닭이다.
수신료와 그 인상 폭, 인상에 부합하는 제 조건들, 수신료 관리 및 배분 방식에 관해 언론연대는 늘 진지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 왔으며 일관되게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요구할 것이다. 언론연대는 민주적 원칙과 진보적 가치에 입각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해 왔다. 부당하고 무리한 인상 추진에는 단호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이는 수신료 통합 혹은 분리 징수 방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론연대는 공영방송 가치와 미디어공공성 원리, 문화다양성 이념과 시청자 주권이라는 대의를 기초로 이 주요 쟁점을 고민한다. 수신료를 사회 역사적인 조건 변화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여타의 문제들과 함께 제대로 된 숙의의 과정을 통해, 사회 공통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제도 문제로 간주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수신료 문제와 공영방송의 민주주의 역량 강화는 따로 떼어놓고 설명될 수 없다. 공영방송 민주화를 위한 수신료 논의에 적극적일 것이며, 공영방송 민주화에 반하는 수신료 논의를 문제 삼는다. 그런 관점에서 언론연대는, 정권의 공영방송 길들이기 정치행위가 명백한, 방통위가 대통령실의 의도에 졸속으로 가담한, 한국 민주주의를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결정적으로 위협할 시행령 개정에 단호하게 반대를 표한다. 나아가, 반민주적 분리 징수 추진 시도를 즉각 멈출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6월 16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논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TV수신료 분리징수는 KBS2TV 폐지를 위한 수순이었나 (0) | 2023.07.03 |
---|---|
김효재 대행은 방통위를 거수기로 만들 셈인가 (0) | 2023.06.20 |
이동관 특보는 부적격하다 (0) | 2023.06.07 |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일하게 하라!” (0) | 2023.05.19 |
[논평]‘검찰의 기소’만으로 면직(?)…후폭풍 커질 것 (0) | 2023.05.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