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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언론의 감시기능 및 표현의 자유 위축된다” 말이 불편하다

by PCMR 2020. 12. 8.


2020년, “언론의 감시기능 및 표현의 자유 위축된다” 말이 불편하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반대에 앞서 언론 피해 예방 및 구제책부터

 

성폭력사건으로 큰 피해를 받았던 반민정 씨는 조덕제와의 끈질긴 법정 싸움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가해자만큼이나 그를 괴롭힌 집단이 있었다. ‘언론들이다.

 

언론매체들은 반민정 씨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2차 가해에 나섰다. 가해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언론들은 그나마 양반(?)수준이었다. 성폭력 피해자 편인척하며 성폭력 사건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것은 고맙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백종원이라는 저명한 이름의 식당에서 식중독을 이유로 부당하게 돈을 요구했다는 황당한 코리아데일리 기사가 온라인에 게재되면서 그에겐 갈취O’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디스패치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줄 수 있는 영상을 캡처한 그대로 노출한 것도 모자라 영상분석 전문가를 동원해 가해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반민정이라는 사람에 꽃뱀이미지가 덧씌워진 상황에서 언론은 마구잡이로 그를 물어뜯었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큰 지지를 받는 이유

 

그러던 중 코리아데일리의 기사(식중독 및 수액사고 후 받은 합의금 등)는 허위·조작 그리고 가해자인 조덕제의 요구에 의해 작성된 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친분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낸 거였다. 그 후, 코리아데일리 편집장이던 이재포 씨는 법원에서 피해자에 대해 일방적인 선입관이 있는 상태에서 취재를 해 과하게 표현했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반민정 씨에 대한 백래시는 끝나지 않았다.

 

반민정 씨에 대한 언론피해는 대법원에서 조덕제에 대한 모든 혐의(강제추행 및 무고)를 유죄로 확정(20189)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조덕제는 법망을 피해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반민정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매체들은 발화자인 조덕제의 입맛에 맞도록 기사를 쏟아냈다. 반민정 측이 언론매체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간 이유였다.

 

그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반민정과 함께 공익소송에 나섰던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1117일 홈페이지를 통해 헤럴드경제가 법원의 조정에 따라 정정보도문 게재와 함께 92건의 기사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판도라TV는 이미 지난해 10월 법원의 화해권고에 따라 사과했다.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에 대해서는 강제조정 명령이 내려졌다. SBS플러스는 조정을 거부, 소송을 끝까지 진행했고 300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진심으로 궁금하다. 반민정에 대한 언론피해는 그것으로 구제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참고로, 반민정 씨가 허위보도로 인해 구체적 피해가 시작된 시점은 20167월경부터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해당 논란은 당초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100294)에 의해 촉발됐다. 정청래 의원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은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실효성 있는 (언론피해)구제제도를 확립하고자 한다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그리고 9,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통해 기업 등 상인의 영리활동 과정에서 고의·중과실로 인한 피해 유발행위를 억지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입한다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에 언론사도 포함된다는 취지였다. 이를 두고 신문협회 등은 재빠르게 부당하다는 입장부터 내놓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상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언론·출판에 관한 행위 등 표현의 자유는 그 특수성을 고려해 상법의 징벌배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언론관계법에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국가기관이나 고위 공직자, 재벌·대기업 등 권력자가 언론의 의혹제기와 비판보도를 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틀린 주장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는 게 불편하다. 언론의 감시 기능과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 또한 중요하지만 언론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언론피해 예방과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논하는 것은 언제나 뒷전 혹은 후속조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남는 찜찜함이다. 글 초반에 언급했던 반민정 씨의 사례를 얘기해보자. 반민정 씨가 SBS플러스를 상대로 받은 위자료는 300만원이 전부였다.

 

언론중재위원회 언론판결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8(10년 동안)까지 언론사를 상대로 한 민사 1심판결 중 원고 승소율은 49.31%,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원고승소율은 39.74%라고 한다. 미디어오늘이 2012~2019(8년 간) 언론 관련 손해배상 판결을 전수 조사한 결과, 국내 언론사가 잘못된 보도로 지불한 손해배상 총액은 6270882632원으로 나타났다. 확정판결로 금전적 배상이 진행된 소송은 315건으로 평균 손해배상액은 1990만원(33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소비자TV를 제외하면 평균은 946만원)이었다.

 

언론 피해자의 평균 손해배상액은 통상 300만원~500만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반민정 씨의 사례를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다. 실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문화일보, 한국경제, 아시아경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피고들은 지속적, 악의적, 반복적으로 허위 사실을 보도해 원고의 명예가 실추됐다면서도 배상액은 한국경제신문 500만원, 문화일보 200만 원을 판결했다. ‘지속적’, ‘악의적’, ‘반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선일보가 메갈리안 회원 교사라고 보도했던 최현희 씨의 사연은 어떤가. 20178월 조선일보는 <수업시간 퀴어축제보여준 여교사그 초등학교선 , 너 게이냐?” 유행>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로 인해 그는 사이버상에서 온갖 모욕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20196월 조선일보에는 정정보도가 실렸다. 그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기사화한 부분들이 존재했을 뿐 아니라 허위 사실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드러났다. 최 씨가 조선일보(기자 포함)로부터 받은 위자료는 400만원이 고작이었다. 그만큼 법원의 언론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은 매우 짠 편이다.

 

통계의 한계도 봐야한다. ‘언론 관련 손해배상 판결이라는 전제는 소송이 진행된사건만이 해당된다. 소송의 문턱까지 가보지도 못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언론피해들이 있다. 변호사 선임 등 소송에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과 법원에 오가는 등의 물리적·정신적 이유로 소송을 포기, 언론에 의한 피해를 감내하는 이들이 한국사회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피해자들에 비해 언론사는 거대권력이다

 

여기 한 사건이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엽기토끼와 신발장이라는 제목으로 다룬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지난 1두 남자의 시그니처-엽기토끼와 신발장, 그리고 새로운 퍼즐편을 선보이며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카메라에 담아 방영했다. 그 남자의 집에는 노끈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그 남성이 진범일 것이라고 단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방송이 나간 이후, ‘다른 가능성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MBC라디오 <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113)한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과 관련해 “1차사건 피해자 시신 손톱에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는 부분은 아무리 기억을 찾아봐도 없다면서 까딱 잘못하다간 사건 방향이라든가 사람들한테 오해를 하게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영역이기도 하지만 파급력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기본적인 팩트에 대한 확인을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924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정훈 기자는 이 분이 다른 범죄 전력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엽기토끼 살인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번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미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될 무렵, 그 인물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 분이 범인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요한 부분은 ‘(그알이)방송될 무렵, 그 인물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문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방송에서 특정된 용의자가 받은 피해들이다. CBS 김정훈 기자는 “(그 분은)별별 일들을 당했다불쑥 사람들이 찾아가서 추궁하고 그걸 고스란히 유튜브에 방송하는 일까지 있었다”, “각종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에도 이분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민들도 정확한 내막을 모르니, 떠도는 말만 듣고 두려워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SBS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 <그알저알(그것도저것도알고싶다)>(926)에서는 도준호 PD는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을 거론하며 방송을 했다고 해서 이들이 범인이다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방송은 가능성을 말한 것일 뿐이고 여전히 제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제보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미 그 사람을 범인이라고 확신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거대권력을 가진 방송의 영향력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긍정적인 평가들이 분명 존재한다. 미제사건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새로운 과학적 기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사건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로인해 실제 해당 프로그램이 수사당국으로 하여금 재수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단정적으로 접근하거나 직접 용의자를 특정하는 부분에서 가끔은 위험해보일 때가 있다. 그 방식은 자칫 언론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방송상용의자에 대한 여론재판이 벌어졌던 것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코로나19 이태원클럽을 중심으로 확산됐던 때는 어땠나. 국민일보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코로나19 확진자 해명> 기사를 통해 확진자의 연령대와 주거지, 직업 등의 개인정보를 상세히 공개해 아웃팅을 했다. 과연, 국민일보는 당사자에게 어떤 피해구제를 했는가. 아마도, 국민일보에 손해배상을 제기하는 순간 국민적 비난 여론은 다시 들끓을 것이 빤하다. 그 당사자는 언론을 상대로 하는 소송을 생각하기도 못할 상황은 아닐까. 비단, 드러난 사건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일반 시민들에 비해 언론사는 권력을 가진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그 권력 앞에 선 피해자들은 너무나도 작은 존재들이다. 언론사들이 공인’, ‘공적인물을 다룰 때 조심스레 접근한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붙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언론사들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들을 고려해가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가.

 

2020, ‘공인에 대한 언론의 자유보다 필요한 목소리는 시민들의 언론피해 예방 및 구제책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언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언론사들은 법무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자칫 한국사회 내에서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를 내왔던 소규모 매체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작은 매체이기 때문에 함부로 보도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기로 누군가 앙심을 품고 소수매체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는 의미다. 소규모 매체들 역시 소송에 대한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징벌적 손해배상논의에 앞서, 언론을 중심에 두고 그들보다 많은 권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구분이 필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인해 공인’, ‘공적사안에 대한 언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만큼 2020년 한국에 필요한 목소리는 언론에 의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책과 예방책이다. 언론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손해배상액은 터무니없이 낮은 게 현실이고, 피해 예방을 위한 언론사들의 노력은 게으르다.

 

조덕제 성폭력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언론보도준칙>,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등이 일선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언론사들이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된다. 문제가 크게 제기될 때에만 소송을 통해 적은 위자료를 지급하고 사과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라도 언론전반에 깔려 있는 반인권적 취재 관행과 보도 시스템을 바꾸고, 일선 현장 기자들에 대한 꾸준한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

 

그래서 아쉽다. 언론현업단체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과 관련해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기 전에 자연인에 대한 언론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가 나타났을 때 구제할 방법을 자발적으로 내놓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는 보다 유의미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언론의 자유가 가능한 것은 그에 따르는 책무를 다할 때여야 한다는 기본적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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