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시민평가단에 TBS 사장 선임을 위한 기준을 제시한다
: 첫 번째 조건은 TBS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TBS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TBS는 서울시의 출연금 삭감과 서울시의회의 조례 폐지로 서울 지역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기회를 무참히 짓밟혔다. 이런 가운데 TBS 신임 사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길 잃은 TBS,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TBS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TBS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 3일 서류심사를 통해 정책설명회와 면접 심사를 받을 차기 사장 대상자를 6명으로 압축했다. 후보자들은 오는 13일 시민평가단을 대상으로 정책설명회에 참여하게 된다. 임원추천위원회는 16일 면접 심사를 거쳐 시민평가단 점수를 반영해 고득점을 받은 두 명을 추천, 서울시장이 최종 임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벌써 ‘밀실 심사’, ‘시민참여 축소’라는 비판에 휘말렸다.
임추위는 11일 비밀유지·개인정보 누설 금지 규정을 근거로 후보자 정책설명회에 블라인드 방식을 채택했을 뿐 아니라, 언론인 취재도 제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해당 규정은 후보자들의 사생활 정보 등을 보호하라는 의미다. 그 규정을 두고 시민평가단에조차 후보자의 신상을 감춘다는 건 억지에 가깝다. 이 같은 결정은 공모의 취지에 어긋날뿐더러 오히려 후보자들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평가를 저해한다는 점에서 재고가 필요하다. 지원 조례를 폐지한 서울시·의회의 권한을 줄이고, 시민평가의 비중을 높여야 마땅함에도, 도리어 시민평가단 점수를 30%로 축소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존의 여러 사례에 비춰보더라도 명백한 후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표류’하는 TBS…서울시·서울시 의회의 모순적 행태
TBS의 현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은 ‘표류’다. 당초 TBS는 서울시 산하로 개국했지만, 2020년 ‘시민참여형’ 공영방송을 기치로 내걸고 미디어재단으로 독립했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그 기반이 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사실상 특정 방송프로그램의 편향을 문제 삼아 출연금을 삭감했다. 그리고 서울시의회는 TBS의 존립 기반이었던 조례를 폐지했다. 그로 인해 타 방송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TBS만의 유의미한 실험들마저 중단된 상태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TBS에 지원금을 끊는 데에만 열중했을 뿐, TBS가 새롭게 가야 할 방향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조례 폐지와 함께 TBS는 방향성 자체를 잃어버렸다. 혼란에 빠졌다. TBS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그에 부합하는 서울시의 지원 형태와 방법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새로운 조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아무런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TBS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사장을 뽑을 것인가?” 이는 ‘TBS 공정성 논란’은 물론 ‘정치 지형 변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이 같은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차기 사장 선임에만 골몰하고 있다. 단순한 관전이 아니다. TBS임원추천위원회는 서울시의회 3명, 서울시장과 TBS이사회가 각각 2인을 추천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최종 임명권도 서울시장이 가지고 있다. 지원 조례를 폐지해놓고는, 유예기간을 틈타 3년 임기의 사장을 뽑는 데 여전히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권한에는 책무가 따르는 법인데, 본인들이 해야 할 책무에는 손을 놓아버리더니 권한만 행사하는 무책임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TBS 신임 사장의 조건…TBS의 혁신 방향 제시 및 추진력 갖춰야
어느 때보다 TBS 차기 사장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TBS는 지난해 11월 <공영방송 TBS 지속발전방안 시민 보고회>를 통해 △시민 참정권 강화 △지역 주민 격차 해소 △시민의 다양성 존중 △시민 생존권 보호 △시민 참여 혁신 등 5대 약속을 TBS의 책무로 제시했다. ‘시민평가회’를 연 1회 개최로 시민들로부터 TBS의 콘텐츠와 성과에 대해서도 직접 평가를 받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TBS의 지속발전방안과 사장 선임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사장 선임 과정에서 지속발전방안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는다. 혁신논의가 사라져버렸다. TBS 구성원들은 이제라도 시민에게 약속한 TBS 혁신안에 맞춰 차기 사장의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이 차기 사장에 선임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차기 사장 선임 과정이 TBS 혁신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간곡한 심정으로 시민평가단에 다음과 같은 TBS 사장 선임을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TBS의 미래 비전, 새로운 책무를 뚜렷하게 제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둘째,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그리고 내부 구성원의 갈등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소통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셋째, TBS 콘텐츠의 정치적 편향 논란을 ‘공정성’ 시비가 아닌 ‘시민의 참여’와 ‘시민에 대한 책무’의 문제로 전환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넷째, TBS 안정성을 담보할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이를 조례 재제정 등으로 연결할 수 있는 추진력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다섯 째, 서울시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TBS를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송철학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컨대, TBS 사장 선임은 TBS 혁신을 위한 과정이 돼야 한다.
표류하는 TBS를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줄 키를 여러분이 쥐고 있다. 부디 길 잃은 TBS의 등대가 되어줄 냉철한 평가를 당부한다.
2023년 1월 12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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