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윤석열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은
‘빈손 외교’로 끝났다
: 윤석열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의 결말은 피해자의 ‘고통 가중’
물컵의 반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일본의 강제 동원을 둘러싼 양 국의 갈등을 푸는 해법으로 ‘제3자 변제’ 안까지 내놓으며 큰소리쳤던 윤석열 정부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국민들이 TV를 통해 지켜본 건 ‘굴종의 모습’에 가까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과 17일 일본을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정상회담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양국 관계 정상화와 발전에 큰 진전”이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한국 언론들은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행보를 ‘12년 만의 방일’, ‘극진한 대접(오모테나시)’, ‘84분간의 회담’, ‘화과자 친교’, ‘두 번의 만찬’ 등의 수식어를 붙여 하나하나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의 내용을 뜯어보면, 보잘것없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미 예견됐던 ‘빈손 외교’ 논란
이번 ‘빈손 외교’는 이미 예견된 측면이 컸다. 대법원은 2018년 양금덕 할머니를 포함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는 반발하며 보복 차원으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며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막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고 조건부로 지소미아(한·일 간 군사정보 교류 체계) 종료를 유예한 바 있다. 이 기간,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은 법원 판결을 근거로 가해 기업들의 국내 상표권과 특허권을 압류·매각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는 일제 강제 동원 해법으로 ‘제3자 변제’ 안을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부가 부정한다는 평가가 제기됐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안은 일찌감치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물컵은 더 채워질 것”이라고 밝혔었다. ‘대승적 결단’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그때부터 미온적이었다. 당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의 입에서는 “(일본은) 1998년 10월에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가 전부였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마무리됐다는 기존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곧바로 “사과가 먼저”라며 정부가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변제’ 안을 거부한 이유다.
사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정부가 큰소리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여론도 있었다. 한일 정상회담 일정이 공개되면서 언론의 시선이 기시다 총리 입으로 쏠린 까닭이다. 최소한 ‘피해자들에 사죄하고 전범 기업들이 배상에 참여할 것’이라는 정도의 발언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뚜껑은 열렸고, 실망감만 커졌다. 기시다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문구를 언급조차 꺼렸다고 알려졌다. 오히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아베 담화도 계승한다는 의미’라며 혹평이 쏟아지는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로 ▲반도체 품목 수출규제 해제, ▲셔틀 외교 회복, ▲지소미아 정상화, ▲한일 청년들을 위한 재단 설립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얻은 건 없다는 평가다.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 품목 수출 규제를 해제한다고 했지만, 화이트리스트 지위 회복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WTO 제소 취하’를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렸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에 대해서도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일본이 원하는 답을 내줬다.
일본은 또 다른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위안부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독도’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또 다른 청구서를 받아 든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들이 튀어나오니 난처한 표정이 역력하다. 대통령실은 ‘위안부 합의 이행 촉구’와 관련해 “논의된 내용을 전부 공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논의가 있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답답한 건,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답했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독도’ 영유권에 대해 대통령실은 “전혀 얘기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들의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쯤 되니,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재개 요청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할까?
일본 언론에 비해 한국 언론은 매우 조용하다. 한국 정부가 청구할 내역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중단’,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중단’ 등을 요청했다는 보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이 차이는 뭔가. 한국 언론 기자들이 무능해서일까? 아닐 것이다. 결국, 한일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퍼주기 외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은 왜 일본만을 향할까?
윤석열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에도 여전히 “대승적 결단”이라고 주장한다.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한일 정상회담은 2015년 위안부 합의처럼 미래 세대에 또 다른 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은 왜 ‘일본’만을 향할지 궁금해진다. 국내 상황은 암담하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만큼 뜨거운 이슈는 ‘주 69시간 노동’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계의 의견만 들었기에 문제가 발생한 거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건폭과의 전쟁’,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 등을 선언하며 노동계를 적으로 돌려왔다. 전장연은 어떤가. 경찰은 어제(17일) 그동안 장애인편의시설 전수조사와 설치계획을 수립해달라며 시위를 이어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를 긴급체포했다. 전장연은 대화를 요청했으나, 정부는 체포로 답했다. 언론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소통’을 강조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출근길 문답은 중단된 지 오래다. 윤석열 정부는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도 야당과의 협치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의 대상에서 왜 이들은 배제돼 있는가.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이 그와 맞바꾼 건 뭔가. 일제 강제 동원 피해 당사자들은 ‘추심 소송’이라는 더욱 어려운 길을 걷게 됐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강제 동원·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존중을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외교’라고 부른다.
2023년 3월 18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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