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대통령실이 던진 수신료 논의, 또 실패를 되풀이할 건가
: 수신료 징수방식 논의가 공영방송 흔들기가 되지 않으려면
대통령실이 홈페이지를 통해 제안한 ‘TV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토론’이 오는 9일 종료된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현행 징수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추천수가 높다.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함께 부과하는 현행 방식은 공영방송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데 효율적이다. 하지만 납부의 강제성으로 인하여 반발이 일어나고, IPTV, OTT 등을 통해 TV를 보는 시민들의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여당과 극우 유튜버들의 조직적인 독려도 있었다고 한다. 중복 응답이 허용되는 인터넷 찬반투표에 대표성을 부여하기는 힘들다. 이런 결과를 두고 “국민 96.1%가 분리징수에 찬성한다”, “편파 불공정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탓”이라고 주장하는 건 그야말로 비약이다.
정부여당은 수신료와 관련한 부정확하고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해 대중 불만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왜곡해선 안 된다. 해외 주요국의 공영방송 재원 모델의 변화를 두고 ‘수신료가 폐지됐다’고 선동하는 게 대표적이다.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사례들은 사실 ‘수신료의 폐지’가 아니라 ‘조세로의 전환’이다. 납부자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 분리징수를 해야 한다면서 강제성이 더 높은 조세 유형을 근거로 대는 건 모순이다. 이들 국가의 공영방송 재원규모는 우리나라의 5~10배 수준에 달한다. 만일, 수신료를 분리징수하거나 폐지하면 이 나라들처럼 줄어드는 재원을 정부 예산 등 다른 방식으로 조달해야 한다. 공영방송을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라면 이런 사실을 감춰서는 안 된다.
‘KBS를 보지도 않는데 왜 수신료를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건 ‘TV수상기 보유’를 기준으로 하는 현 제도가 시청자의 미디어 이용 변화에 조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신료는 시청여부가 아닌 공영방송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분담금이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비용분담(수신료 납부)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얻으려면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공영방송 재원의 안정성을 위해 납부의 강제성이 일부 필요하더라도 수신료 제도의 다른 과정, 즉 시민이 수신료의 산정과 배분, 사용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관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 같이 산정, 배분, 징수, 운영 등 수신료제도 전 과정과 범위에서 토론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20대 국회에 수신료 인상안도 제출된 상태다. 대통령실이 이 가운데 유독 ‘징수방식’만을 문제 삼은 건 다른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KBS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공영방송 흔들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요한 건, 공영방송과 시민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불만을 선동하여 공영방송과 시민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KBS와 정책당국은 이번 토론을 통해 확인된 시민들의 불만을 경청하고,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불만을 듣는 데서 출발한 수신료 토론이 ‘공영방송 흔들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파적 이해를 초월하는 사회적 논의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댓글여론이나 온라인 투표가 아니라 투명하고 개방적인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신료 폐지까지 테이블에 올려 치열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KBS가 지난 2021년 시행한 수신료 공론화위원회 모델을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영방송이 위기에 빠진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역대 정권들은 공영방송의 미래 대신 눈앞에 정치적 이익을 선택했다. 수신료에 대한 대중 불만을 공영방송을 흔드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했다. 용산의 선택은 무엇인가. 또 실패를 되풀이 할 건가.
2023년 4월 7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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