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평

방통위는 RTV <백년전쟁>에 대한 중징계를 철회해야 한다

by PCMR 2013. 9. 11.

 

0911[논평]백년전쟁.hwp

 

 

[논평] 방통위는 RTV <백년전쟁>에 대한 중징계를 철회해야 한다

시민방송 RTV는 내일(12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백년전쟁>에 대한 재심 청구를 한다고 밝혔다.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로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지난 7월 25일 이 다큐멘터리가 공정성과 객관성, 명예훼손 금지 조항 등을 위반했다며 ‘관계자 징계 및 경고’의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RTV측은 해당 프로그램이 각종 사료에 근거하고 있으며, 방심위의 징계는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의 내용보호를 명시하고 있는 법률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불복절차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백년전쟁>에 대한 방심위의 중징계는 명백한 과잉심의로 방통위는 이를 철회해야 마땅하다. <백년전쟁>에 대한 방심위의 중징계 결정은 심의내용과 절차에서 모두 커다란 하자가 있다.

<백년전쟁>은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이다. 방송법은 “시청자가 자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방송을 요청한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방송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방통위 규칙은 “해당 프로그램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시민방송 RTV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전문으로 편성하는 퍼블릭액세스 채널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시청자의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하는 방송사다. RTV가 <백년전쟁>을 방송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는 RTV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다.

방심위는 법률에 따라 RTV가 퍼블릭액세스 채널이며, <백년전쟁>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최대한 반영하여 심의를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중징계를 결정한 심의위원들은 “퍼블릭액세스 채널이라고 해서 방송법이나 방송심의규정 위에 군림하는 예외적인 채널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일반 심의규정을 똑같이 적용해 <백년전쟁>을 심의했다. 심의의 출발점부터 잘못된 것이다.

중징계의 사유도 타당치 않다. 시청자제작프로그램은 법률에서 그 내용을 보호하기 때문에 방심위가 RTV를 징계하기 위해서는 RTV가 해당 프로그램의 편성을 거부하거나 수정을 요구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유나 명백한 법령위반 사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제시해야만 한다.  

방심위가 제시한 징계사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객관성 위반이다. 객관성 위반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허위사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방심위는 <백년전쟁>이 제시한 자료가 검증되지 않은 자료이며, 명백히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한 것은 객관성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방심위가 문제 삼은 자료는 미국의 정부문서, 미국 언론의 기사, ‘신한민보’, CIA 비밀자료 등이다.

이 자료가 검증된 자료인지 아닌지,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인지 아닌지는 방심위가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방심위가 이 자료를 ‘검증되지 않은 자료’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역사학계 전문가의 자문을 필히 받아야만 한다. 또한 해당 자료를 반박하는 근거들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방심위는 징계사유를 입증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RTV의 의견진술마저 기각하였다. 해당 자료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방심위의 주장이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일방의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주관적인 견해를 기반으로 법적징계를 내린 것은 명백한 행정권 남용이다. 방통위는 행정처분을 취소하고 재심을 실시하여 객관성 위반여부에 대한 합리적 검증과정을 거칠 것을 명해야 한다.

두 번째 징계사유는 공정성 위반이다. 퍼블릭액세스는 자기 주장을 펼치는 프로그램으로 공정성 심의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공정성 심의를 남용할 경우 퍼블릭액세스의 도입취지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만약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에서 공정성 문제가 있다면 반대 주장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RTV 측에 편성·방송을 요청하면 된다”는 야당측 심의위원의 주장이나 “만약 RTV에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반박하는 영상물의 방영요청이 접수된다면 RTV는 동일하게 반론권을 보장하여 방송의 공정성을 달성할 것”이라는 RTV측의 입장이 더욱 합리적이고 방송법 취지에 부합하는 판단이다. 퍼블릭액세스는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 엄격하게 검증된 얘기만 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사자 명예훼손 금지를 적용한 것도 부적절하다. 이미 <백년전쟁>과 관련하여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 중에 있었다. 행정기구인 방심위가 법원의 판결에 앞서 명예훼손 여부를 재단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방송심의규정 20조 3은 “그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앞서 말한 대로 RTV가 방송한 내용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여부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황에서 20조를 적용했기 때문에 이 역시 재심에서 다시 다뤄야 할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방심위가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최고 수준의 법적징계를 내리면서 이를 뒷받침할만한 합리적인 징계절차를 거치거나 합리적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법률로써 보장하고 있는 시청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었고, 표현의 자유는 더욱 위축되었다. 부당한 심의의 근본원인은 방심위원들이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개인의 정치관에 따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데서 비롯된다. <백년전쟁> 심의는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가 아니라 관련 법령과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방통위는 RTV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심을 실시토록 하고 잘못된 행정처분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