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김어준 방송이 “문제없다”는 선거방송심의위, 성폭력 가해자 주장에 힘 실어줬다
: 선거방송심의위는 왜 ‘성폭력 사건 보도’ 조항은 적용하지 않았나
선거방송심의위가 성적인 행위를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의원의 해명을 그대로 인용한 방송에 대해 ‘문제없음’을 결정했다. 언론연대는 이런 결론이 불러올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지난 5월 3일,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에 제기된 성적괴롭힘 관련 의혹을 두고 “여성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짤짤이는 동전으로 홀짝 게임을 맞추는 거다. 학교 수업시간에 몰래 남학생들이 많이 했다”면서 “제가 볼 때에는 화상 회의인데 화면에 안 보이니까 ‘감췄냐’, ‘몸을 숨겼냐’라는 뜻으로 한 것이다. 남자들끼리 하는 가벼운 농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자들은 단박에 알아듣는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한 여성 보좌진들이)이 단어를 모르거나 잘못 들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김어준 씨의 발언은 ‘성적 괴롭힘’ 의혹이 제기되자 최강욱 의원이 해명한 그대로다. 최 의원은 앞서 “숨어서 짤짤이를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한 것”, “가벼운 농담에 불과한 발언”이라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최강욱 의원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최 의원의 주장과 달리 민주당 보좌진 협의회는 “함께 있던 복수의 제보와 증언을 통해 ‘짤짤이’가 아닌 그와 비슷한 발음의 ‘성희롱성 발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명백히 피해 사실이 있는 사건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선거방송심의위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관련해 ‘문제없음’을 의결했다.
언론연대는 심의 절차와 과정, 결과에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방송심의위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와 관련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1항 “대담·토론프로그램 및 이와 유사한 형식을 사용한 시사프로그램에서의 진행은 형평성·균형성·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와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8조(객관성) 제1항 “방송은 선거에 관련된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다뤄야 한다”는 조항만 적용해 심의했다. 방송에서 다룬 발언 내용이 ‘성적 괴롭힘’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범죄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현행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의3(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등) 제3항과 제4항은 “방송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루어서는 아니 되며,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방송은 성폭력‧성희롱 사건 가해자(피고인, 피의자, 혐의자,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 확정된 자를 포함하며, 이하 ‘가해자’라 한다)의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 규정 제30조(양성평등)는 “방송은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선거방송심의위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관련해 해당 조항을 적용해서 심의하지 않았다. 김어준 씨의 발언은 가해자의 말을 부각시킨 것일 뿐 아니라, 성폭력 사건을 가볍게 인식하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선거방송심의위의 ‘문제없음’ 결론이 불러올 파장이다. 선거방송심의위라는 공식적인 심의기구에서 김어준 씨 발언에 대해 “문제없다”라고 결정했다. 다른 방송사들 입장에서는 ‘김어준처럼 방송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잘못된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이는 방송사로 하여금 개선의 여지를 제거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8명의 심의위원 중 단 한 명만이 제재의 필요성을 얘기했다는 점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심의과정에서 한 심의위원은 “방송 당시 그 정도까지밖에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발언(김어준)처럼 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두둔했다. 이 같은 주장은 앞서 설명했듯 엄연히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 주장이 제기된 시점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최강욱 의원의 성적 괴롭힘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선거방송심의위의 결정이 더욱 우려되는 이유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최강욱 의원을 옹호하는 이들이 제보자 색출 등 2차 가해를 가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힌 박지현 비대위원장에게 비난 문자가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어제(25일) 최강욱 의원의 징계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뤘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선거방송심의위가 일조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심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5월 26일
언론개혁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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